'가끔은 이런 감수성'에 해당되는 글 44건

  1. 2008.01.24 아날로그를 추억하며
  2. 2008.01.05 비겁함에 대한 변명
  3. 2007.12.25 시니컬한 NY Times
  4. 2007.12.20 어처구니없는 한 20대의 비겁한 변명
  5. 2007.12.16 눈사람에 관한 진실

아날로그를 추억하며

이웃님 블로그에 놀러갔다가 몇년만에 귀여운 귀여운 아날로그 테이프 무리 (굳이 얘기하자면 구형 마그네틱 스토리지라고 해야하려나) 의 사진을 접했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ADC 컨버터 없이는 아날로그 신호를 마땅히 회로적으로 처리하기조차 힘든 시대에 살면서도, 때때로 접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끌어내는 기억의 메타포들을 우연히 접할때면 종종 아련한 기분에 젖어들곤 한다. 어쩌면 0과 1의 디짓digit으로 모든 것이 표현되는 (그래서 차갑게만 느껴지는) 디지털의 특성 때문에 LP판이 긁히는 소리조차 지금에와서는 낭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더불어 요새 아날로그 써킷 디자이너들은 몸값도 킹왕짱이다) 일지도 모른다. 뭐, 난 어차피 막귀라 CD가 짱짱거리네, LP가 음이 풍부하고 부드럽네 하는 내용은 당연히 잘 모른지만 핫핫. 얘기가 한도 끝도 없이 흘러가네.

각설하고.

예전에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바로 레코딩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라디오를 듣던 기억이 새록거리며 피어난다. 그러고보니 가장 먼저 내 돈을 주고 샀던 앨범은 바로 신승훈 2집이었구나. 한번 사면 뽕을 뽑는 성격이 초등학교 때부터 싹수를 보였던 것인지 여전하여 테이프가 늘어날 때 까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그 다음부터는 앨범을 사자마자 늘어날 것을 대비해서 공테잎에 복사해서 들었던 기억이 나네. 어쩌면 지금보다 그때가 더 집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테잎 2개를 넣을 수 있는, 결과적으로 테잎 복사가 가능한 소형 오디오를 사고 어찌나 기뻐했었는지. 하기사, 그 때보다야 워크맨 선물로 받았을 때가 더 기뻤으려나.

중학교 2학년 때 듀스 3집을 CD로 처음 선물로 받으면서 그 이후 테이프에서 CD로 앨범을 모으는 카테고리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CD는 당시 내 입장에서 너무 비싼 하이엔드 제품이었기 때문에 그닥 많이 사질 못했다. 뭐 어쩌면 포터블 CDP가 없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어쨌건 CD를 조금씩 사모으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자주 듣는/듣고 싶던 앨범은 여전히 테잎으로 샀었다. 그 무렵에는 건즈앤로지즈를 필두로 스매싱 펌킨즈, 퀸을 알아가면서 락에 취향을 붙이다 못해 메탈 쪽으로 급격히 취향이 쏠리던 시기였다. 학부 1학년 때 마아녀에게 빌려줬다가 무려 2년만에 돌려받은 (힘들게 갈구면서 받아두고 지금은 어디갔는지도 가물가물한) 판테라의 초기 앨범 카우보이즈 프롬 헬이나 발거 디스플레이 오브 파워를 사기 위해 지리도 모르는 명동거리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핫핫.

지금 생각하면 열라 유치하게도 당시 날카로운 첫키스를 했던 동네 누나-_-에게 듣기좋은 말랑말랑한 팝송들 중간중간에 멘트를 녹음해서 선물한 적도 있었구나. 푸힛. 학부 2학년 때 어찌어찌 둘이 다시 만나서 그 당시 테잎을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 느끼한 테이프를 선물하던 그 짓은 아마 고등학교 때까지 했던 걸로 기억한다. 블링크의 베티와 키스미가 나왔을 때였으니까 대충 계산하면 나오려나;; 상상 그대로 키스하려고-_-  부러 좋은 노래라고 이어폰을 나눠끼고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 엇차차, 그건 CD였나;;
지금은 들으려 해도 들을 장비조차 모조리 고장이 나서 없는 마당에도 이사다닐 때마다 버리지 않고 기를 쓰고 가지고 다니던 (그리고 어김없이 책장 어름에서 뽀얖게 먼지가 쌓여 천대받고 있던) 녀석들과 눈물의 이별을 한게 바로 이번달인데, 문득 녀석들을 괜히 버렸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버린 것은 테잎 무더기가 추억의 조각들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비겁함에 대한 변명

상대방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준다는 사실은 일견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같이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은 미안하기도 하고 슬픈 일이다. 때로 나도 그 입장에 서기도 하고 그 반대 입장에 서기도 하기 때문에 가볍게 대답하기도 곤란하기도 하다. 다 알고 있다. 대답없는 메아리도 있는 것이고, 캐치볼을 하러 던진 공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작별인사를 한 누군가를 영원히 못 볼 일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어설픈 관계가 끝장나면 심심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 혹은 나를 계속 좋아해줬으면 하는 이기심 때문에 차일피일 대답을 미루고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알고 있지만 행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물론 다 알고 있다. 답도 나왔고, 과정도 그려진다. 하지만 아는대로 행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난 이렇게 비겁했던가.

시니컬한 NY Times

싸이에도 올렸었는데, 생각해 볼 만한 글이라고 생각이 되어 고대로 퍼 나름.
이거 너무 요새 내 이글루가 정치 일색으로 흘러가나 -_-;;; 그나마 오던 사람들도 떨어져 나갈;;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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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TImes에 어제 우리나라 선거와 관련해서 실렸던 글의 일부다.

"Mr. Lee — a former star executive at several subsidiaries of Hyundai, the best known among the nation’s chaebol, or family-controlled industrial conglomerates — would be the first businessman-turned-president in South Korea. 

Pollsters and political analysts said South Koreans were so used to financial scandals involving chaebol executives that they were ready to withhold moral indignation and give Mr. Lee a chance to create jobs and curb soaring housing prices.
"

대충 해석하면;;(영어 해석 넘 싫어서 걍 의역남발ㅋㅋ) 한국의 재벌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족벌 경영 기업 현대의 유명 관리자 출신이자  혹은 였던 이씨는 한국 최초의 기업가 출신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조사원과 정치 분석가들에 따르면 한국 국민들은 재벌 회장들이 연루된 금융 비리에 워낙 익숙해서 기꺼이 도덕적 분노를 억누르고 이명박에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치솟은 집값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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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라 밖에서 바라보면 이런 넌센스라는 거다. 이건 사회가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게 아닌가. 어차피 이미 끝난 선거니깐 MB가 잘해주길 바라는 수 밖에. 이 양반 가장 걱정스러운게 임기응변으로 불도저같이 밀어붙여가 반짝 5년간만 경제가 좋다가 임기 후 10년 이내 지난 IMF와 같은 부작용의 해일이 몰려오는 것이다. 제발 미시적으로 보지말고 거시적으로, 그리고 단기적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나라를 매니지먼트 해줬으면 좋겠다. 


어처구니없는 한 20대의 비겁한 변명

"20대, 우리가 투표를 포기한 이유"

프로젝트 보고서를 쓰는 막간에 웹서핑을 하다가 저 제목을 보고 충동적으로 클릭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름 대선 후보들의 사진이며 휴대폰 모양이며 신경은 잔뜩 쓴(겉멋만 엄청 들고 내용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 글을 접했다. 사람 사는 세상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물론 각자의 생각이 존재하고, 블로그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야 무슨 말을 써도 상관은 없다 싶다만, 문제라면 포스팅한 사람이 다음 블로거 기자라는 사실일까. 사견이지만, 기자라는 신분(정식은 아니라도)이기 때문에 장난으로라도 글을 쓰기 전에 자기 글이 가질 파급 효과를 한번 더 생각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링크한 원문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저 블로거는 이번이 첫 투표였는데 기말고사를 보다가 부재자 투표 신청을 하지 못해서 투표를 하지 않았단다. 자기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투표를 하지 않았는데, 카테고라이즈드된 그 이유가 "귀찮아서," "깜빡 부재자 투표를 못해서," "찍을 사람이 없어서," "장난으로 무효표(이중 표기)를 해서"라는 식이었다.

흠... 나름 친한(혼자만 친한가ㅋ) 이웃 블로거 님도 부재자 투표 선거 기간을 놓치셔서 이번에 투표를 하지 못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쓰기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저 블로거의 말투가 너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니깐 글 읽고 언짢아도 넘 노여워 마세요 ㅠㅠ)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쉬워 한다기 보다는 결국 이유라고 붙여놓은 것이 "모든 것이 성적과 연결되는 지금 같은 시대에 저희에게는 투표보다 기말고사가 더 중요했다"는 것이란다. 사실 내가 화난 대목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저 말이 없었으면 뭐 이런 글이 있나 황당해할 일도 없었을테고, 그냥 사람들의 정치 무관심이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혀나 차면서 넘어갔을 터였다. 미처 몰랐다는 것과 뻔뻔하게 저렇게 얘기하는 것은 백팔십도 틀린 문제라는 기분이 드니까. 더군다나 20대가 투표를 포기한 이유라는 저 거창한 제목이라니.

황당해하면서 읽던 글은 점입가경으로 마지막 문단에서

"그러나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정치인들 스스로 우리 20대를 투표소로 끌어 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략)... 정치를 통해 미래와 희망을 보게 해주십시오."

라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글로 끝맺음을 한다. 결국 자신의 무관심이라기보다는 20대를 투표소로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정치인들의 문제로 살짝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는 시크하게 투표를 안 했다는 죄의식(이나 있나 모르겠지만)을 그들 탓으로 홀가분히 털어버린다. 이거야말로 슬쩍 떠넘기기 정치판이랑 틀린게 뭐가 있단 말인가.

아니 뽑을 사람이 없으면 그나마 그중에 나은 사람이라도 뽑았어야지. 그전에 대체 저 정치인들은 누가 뽑았지? 투표를 해서 의무를 다하고서 정치판이 뭐 같다고 비판을 해도 답답할 판에 남탓으로 돌려버리다니. 정작 스스로의 정치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무심하게 도외시한 채 정치판에 있는 이들을 무시해도 되는가 하는 근본적인 생각은 못 하는 것인지 한심하다.

기권하는 것도 포기하고 참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선거 참여는 단순하게 말해서 국민의 간접적인 정치 참여이다. 출마자를 잘못 찍었다면 지난 5년간처럼 그 책임을 지는거고. (개인적으로 지난 5년간이 다 노통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만) 결국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최악의 후보라도 막는다는 심정으로 관심을 가졌어야 하는거다. 결국 무관심이라는 투표의 또 한가지 방편으로 최악 또는 되서는 안될 사람이 득표하는 것을 방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회창 캠프에서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기자에게 말해서 기사화된 적이 있다. 그 당시 기사를 접하고 국민을 싸잡아 바보취급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화가 났었는데 그것과 같은 생각이라고 본다. 무관심한 이들이 정치혐오증을 "핑계"로 최악의 후보가 뭐가 되건 방치하기 때문에 점점 그런 정치인들이 늘어날 수 있는거고.

통합신당의 정동영을 보자. 정치가로서 비전도 없고, 소신도 없고, 신념도 없고, 우유부단하기만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기가 하한을 치던 노무현을 배신하고 탈당 후 창당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코메디를 보여준다. 대체 열린우리당 당의장은 누구였나. 통일부 장관은 누구였나. 넌센스가 따로 없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인물인 그가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해서 인기없는 노무현과 (다시 말하지만 난 무조건적인 노무현까는 절대 아님--;; 능력은 역부족이었으되 소신은 있다고 봄) 나는 관계가 전혀 없어요~~ 라는 전국민을 상대로 개구라를 치면서 슬쩍 정부의 공과로부터 발을 빼는 것은 넌센스중에 넌센스다. 그리고 그런 사기극의 와중에 이번 대선에서 쓸어담은 표가 대체 얼만가.

명박이의 BBK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네거티브 선거전략(물론 정동영만 그랬던 것도 아니지만)을 세운 것은 또 어떤가. 난 정동영이 자기 소신과 비젼을 얘기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물론 이명박이 무죄라는 것을 나 또한 전~혀 믿지도 않지만, 아직 수사가 종결된 것도 아니고 제대로 확실한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저 정황과 추측(정확할 것이라고 사료되지만ㅋ)만 가지고 블라블라 찌질거리던 사람이 누구던가. 니가 전여옥이냐 유시민이냐. 개처럼 물고 늘어지려면 적어도 그 둘처럼 공부도 많이 하고, 그야말로 독하게 물고 늘어지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무조건 얘가 이래이랬대요~~ 라고 어린애가 엄마한테 이르듯 찌질거리는 꼴이라니. 대선 후보 확정되고 선거가 고작 한달밖에 안 남았는데, 자기 비젼을 제대로 설파할 시간조차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딴거 다 필요없이 얘 나쁘니까 나 뽑아줘야되요?라고 찌질거리는 꼴이라니. 이런 자격도 없는 쓰레기 양심을 지닌 사람이 되면 안되니까 투표를 해야 하는거다.

저 딴에는 성의를 가지고 열심히 글을 쓴 것 같은데 정말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 변명과 끔찍한 농담들에 오늘 투표율이 사상 최저치라는 기사가 오버랩되면서 한숨만 나온다. 날 부글부글 끓게 만든 저 양반은 결국 비겁하게 니들땜에 투표 하기 싫었어라는 변명만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정말 투표하고 싶었는데 못 한 사람도 많다고 본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라 자신의 무관심을 단순히 정치판에 대한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태도가 슬프고, 저런 사람이 성인이라는 사실이 한심하고, 정규교육과정을 다 마치고 그 중요한 기말고사를 치루는 대학생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야 이 양반아 내 후배는 오늘 투표하러 KTX 타고 대구 내려갔다우.. 그정도 열의까지 보이지는 못할지언정 그 책임을 전가하지는 말았어야 하지 않나.

그렇다고 뭐, 투표 안 한 사람은 정책비판하면 안되다-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그닥 찬성하지 않는다. 다만 느껴보시라. 내 무관심이 자격없는 사람을 정치인으로 만들고(이건 비단 오늘 대선 얘기만이 아님;;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그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K1이나 찍으며 뭐하고 노닥거리는지 보면서 반성하고, 통감해 보시라. 물론 그를 찍은 사람들, 그가 찍히게 막지 못한 사람들과 같이 그 결과는 겸허히 나누어야 할 테지만.

아~ 나는 보고서 안 쓰고 흥분해서 뭐하는거여 ㅠㅠ 너무 길게 써서 다시 읽기도 싫다..

눈사람에 관한 진실

눈이 내렸다.
사위가 온통 하얗게 치장된 와중에 손이 얼새라 호호 불어가며 눈을 뭉쳤다.
단단하게, 동그랗게, 크게.

소복이 쌓인 눈밭에 조그만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눈덩이를 굴릴 때마다 작았던 눈덩이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이 정도 눈이라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왠지 아침해가 어두운 동쪽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올 무렵이면
애써 뭉친 눈덩이쯤 쉬이 녹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직관, 혹은 육감.

눈을 굴리던 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미처 몰랐었는데 눈밭에는 눈덩어리를 굴리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하얗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눈덩이 곳곳의 진흙 얼룩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올 무렵,
채 아쉬운 마음조차 남겨두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왜 나는 보지 못했었을까.
어떻게든 얼추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미 예상되는 결과를 외면하고 거짓부렁으로 스스로를 속인 탓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던거다.

내 등 뒤로 남아 있는 눈덩어리는 "내 생각처럼"
날이 밝고, 볕을 받으면 녹아 사라져 질척한 흔적만 남기겠지.
존재했던 한순간이 마치 어느 겨울날 새벽녘의 마법처럼 현실성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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