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에 관한 진실

눈이 내렸다.
사위가 온통 하얗게 치장된 와중에 손이 얼새라 호호 불어가며 눈을 뭉쳤다.
단단하게, 동그랗게, 크게.

소복이 쌓인 눈밭에 조그만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눈덩이를 굴릴 때마다 작았던 눈덩이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이 정도 눈이라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왠지 아침해가 어두운 동쪽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올 무렵이면
애써 뭉친 눈덩이쯤 쉬이 녹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직관, 혹은 육감.

눈을 굴리던 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미처 몰랐었는데 눈밭에는 눈덩어리를 굴리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하얗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눈덩이 곳곳의 진흙 얼룩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올 무렵,
채 아쉬운 마음조차 남겨두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왜 나는 보지 못했었을까.
어떻게든 얼추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미 예상되는 결과를 외면하고 거짓부렁으로 스스로를 속인 탓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던거다.

내 등 뒤로 남아 있는 눈덩어리는 "내 생각처럼"
날이 밝고, 볕을 받으면 녹아 사라져 질척한 흔적만 남기겠지.
존재했던 한순간이 마치 어느 겨울날 새벽녘의 마법처럼 현실성을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