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자리

때로 진실은 잔혹한 법이다.
하지만 그런 잔인함에 같이 슬퍼해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15살 무렵의 나와, 19살 무렵의 나와, 그리고 지금 20 중반을 갓 넘긴 무렵의 내가 느끼는
'의리'라는 단어의 정의와 그 무게감은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이해하지 못하던 것들을 (슬프게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때때로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결국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만의 슬픔이 아니었고, 나만의 아픔이 아니었고, 나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일상에 쫓겨, 내 사정에 쫓겨 같이 슬픈 척, 같이 씁쓸한 척 해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잔인함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새벽 3시를 조금 넘긴 이 시각, 밀려드는 부담감에 잠이 오질 않는다.
잘 수 있을 때 잠을 청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난 지난 2년간 대체 뭘 하고 지냈던 거냐... ㅠㅠ
잠자리에서 엔간하면 꾸지 않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별 의미도, 내용도 없는 웃어넘길만한 꿈이다.
하지만 그냥 웃어넘기지 못하는건 이것이 혹시 작금의 상황이나, 내재된 욕구를 반영하는 뭔가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의 반영이다. 뭐 그래봤자 예전의 그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러나 결국 술안줏거리나 가끔 피식 웃곤 하는 조야한 추억 정도로 여겨지는) 하나의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짓을 할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지만, 결국 나는 아직 바닥을 치지 못했나 보다.
그럴 정도의 절박함은 아직 없는 것인지, 아니면 느긋하도록 타고 난 것인지. ㅋㅋ

담배 한 대를 물고 하늘을 쳐다보는데 삼태성이 반갑게 고개를 디민다.
가장 처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운 별자리가 오리온 자리다. 반가움의 탄성이 절로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잿빛 연기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난 별들에 잠시 옛 생각에 젖었다.

오리온 자리를 매개로 시작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상처입고, 상처주고 이별했던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을까.
오늘은 열아홉, 혹은 스물.. 그 무렵의 꿈을 꾸게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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