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여느때와 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혹은 내리던 날-의 늦은 밤이었다.
우울함에 취한 습관적인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반사되어 후회라는 포장을 하고 돌아왔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과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끝도 없는 늪속으로 발을 잡아끄는 것 같았다.

다음날 멍하니 일어나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으려니 하릴없는 회한이 밀려왔다.
제 말을 벤 김유신처럼 뭔가 큰 리액션이 있어야 이짓을 그만두지 싶나 헛웃음만 나왔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던 내 말에 되돌아온 조소가 눈 앞에서 끊임없는 리플레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문득 이 상황을 즐기는 것은 아닌가- 이 관계에 만족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거듭 반복되는 실수는 더이상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행동임은 알고 있다.

익숙함 때문인가?
외롭기 때문인가?
단지 지쳐서 이를 해소할 대상을 원할 따름인가?
그도 아니면...?!
아니, 난 생각만큼 외롭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았다.
즐겁지는 않지만, 괴로울만큼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고 있다.
잔인하게 말해서 어떻게 책임을 진다거나 할 생각도 전혀 없다.

비겁하게도 비단 나의 문제만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사하고 유치함의 극치.

무언의 합의.
어쩌면 무폭력의 폭력.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과, 거절하지 않을 것을 아는 사람.
아니다, 거절하지 않는 사람과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아는 사람?
어쩌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과, 거절하지 않을 것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뭐가 맞는 것인지도.
뭐가 옳은 것일지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아니, 뭐가 옳은지 그른지는 몰라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때론 생각한대로 행동하는 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prev 1 ··· 122 123 124 125 126 127 128 ··· 13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