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함에 대한 동경

나이테가 겹겹이 둘러질수록, 그리고 켜켜이 먼지쌓인 앨범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하나씩 잊어가고, 하나씩 잊혀지고, 하나씩 잃어간다.

잠시라도 안보면 미칠 것 같던 사람도, 과연 이거 없이 살 수 있었을까 싶던 축구도,
감독이나 적어도 평론가쯤은 되고 싶다는 헛된 꿈속에서 허부적거리게 만들어주던 영화에 대한 열정도
밤사이 몰래 내린 첫눈처럼 스러져버렸다.

사랑은 현실에 산재한 각종 문제에 한참 뒷켠으로 밀려난지 오래고, 축구는 일과 공부에 앞자리를 내주었다.
영화? 재주없는 글솜씨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젠 복잡한 영화를 보면 골치가 아플까봐 액션이나 코메디가 우선이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했다.
미칠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조심스레 슬쩍 처음 잡던 손이나,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몇날 몇일을 고민하다 시도하던 첫키스.
처음 입술과 입술이 마주닿던 그 순간의 떨림, 그리고 환희.
그 모든 것들이 추억이 되어버렸다.

다시 한번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다.
가슴졸이던 순간들, 미숙함이라는 탈을 슬쩍 제낀 익숙함이라는 가면을 쓴 또 다른 미숙함.
미숙한 데이트, 어설픈 스킨십, 수많은 대화들과 오해, 그리고 그당시 정말 애절했던 이별.

그리고 또 연애를 한다.
손을 잡아도 되겠다 싶으면 손을 잡고, 이쯤이다 싶을 때 키스를 한다.
거절당하지 않을만한 부탁을 하고, 토라졌다 싶을 때 이정도면 됐다싶은 선물.
장소에 맞춰 적당히 갈만한 식당도, 날씨에 맞춰 적당히 시간 보낼만한 장소들도 대충 안다.
시간과 분위기에 따라 적당히 집에 할만한 거짓말도, 무려 4가지나 준비해 두었다.

첫 데이트 때 어디를 갈까 밤새 고민하던 즐거운 피곤함과
손을 잡아도, 팔짱을 껴도, 키스를 해도- 예전의 그 떨림이나 설레임은 어디로 간건지.

그렇다고 너도 혹시 그렇지 않냐고 물어보면 안 된다는 것쯤-
잘 알고 있다.

2006. 2. 5.

prev 1 ··· 125 126 127 128 129 130 13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