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순환로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 막혔으나 그닥 힘들지는 않았다. 부슬거리던 빗방울이 차창에 부딪히며 치닫던 그 와중에도, 불빛-테일램프, 반댓차선의 헤드램프의 행렬- 들은 쉽없이 망막으로 부딪혀 명멸하는 듯 했다.

생각해보면, 그 길은 한번쯤 지났음직한 길이었다. 아니, 지났음이 분명한 길이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기억이 무채색 흑백 무성영화에서 총천연색 컬러의 디지털 영화마냥 또렷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씩 하나씩 점점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지는 기억에서 기인한 기묘한 기분속에서 차가 꽝꽝 울리도록 틀어놓은 음악조차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 어쩌면 별거 아닌 죄의식에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그럴 필요 없음에도 극도로 긴장했는지도 모른다.

채 차창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담배연기가 알싸하니 코를 간질이고, 그덕에 약 10여초간 쉼없이 재채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재채기를 심하게 하던 그 와중에 '그곳'을 미처 고민할 여력도 없이 지나치고 말았다.

점점 멀어질수록 또렷이 떠올랐던 기억들이 다시 저편 깊숙이 가라앉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홀가분해지는 이 기분 그대로라면 이미 지나친 그곳에 일부 흘려버리고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