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소설

사람과 기억이란 떼놓을래야 떼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어쩌면 사람이라는 영장류 자체가 항상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기억이란 제각기 다른거니까요.

드라마 "마왕"의 승하는 자신을 찾아온 오수에게 저렇듯 중의적인 말을 내뱉는다. 뭐 솔직히 정확하게 기억나는 대사는 아니지만 대충 비슷한 말을 했던 듯-,.- 애니웨이, 하다못해 드라마 대사 한 구절에서도 드러나듯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기억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감히 단언하고, 또 많이들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한다. 조작된 기억, 혹은 개개인에 의해 편집된 기억을 모티브로 한 영화, 만화, 소설 등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많으니까.

어찌 사람이 하나의 감정으로만 살아갈 수 있으랴. 이러다가도 저러기도 하고, 엄청 좋아하다가도 순식간에 가장 싫어지는 변덕스러운 것이 또 사람의 맘이다. 당연히 그 모든 것을 컨트롤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컨시퀀틀리, 당연히 좋았던 감정이건 슬펐던 감정이건간에 이넘들은 혼재되어 머릿속에 들어앉게 된다. 공간은 한정되고, 기억해야 할 일들은 세월에 따라 계속 쌓여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국 이넘의 기억이란 녀석들은 필터링되어 원하는 모양대로 예쁘게 포장되는 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로우패스나 하이패스 필터처럼 의식적으로 이넘은 기억하고 이넘은 잊어버리자고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무의식 또한 의식의 반영이 아닌가. 무의식적인 자기의사의 반영이야말로 보다 본인에게 솔직한 내면에 숨기고 싶은 것들이 숨겨놓은 이빨을 드러내는 자기의사표현인 것이다.

기억의 필터링은 대체로 나쁜 일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이너스적 필터링 후에 남는 것은 그 때 조금만 더 어찌어찌했음 어땠을까 하는 '후회'다. 이문세가 기억이란 사랑보다 슬픈 것이라고 노래했듯이 이러한 후회는 끊임없는 자기비하와 끊임없는 아쉬움 혹은 집착을 수반한다. 이미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만일'이라는 가정 명제 하나로 끊임없는 사고와 감정의 침잠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의지도, 친구도, 부모도, 연인도 될 수 없다. 고래로 전해오는 뻔한 말 그 자체 그대로 '시간이 약'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해서 온전한 기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기억이란 넘은 스스로를 아름답고 숭고하게 미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한다. 결국 이러쿵저러쿵 해도 인간 스스로의 방어기제가 표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로우패스 필터 바로 뒤에 하이패스 필터를 달면 결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기억은 새로운 시그널로 재창조과정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무의식의 본격적인 간섭이 시작된다. 그리고 '상기'라는 이름의 일련의 과정을 뱀이 끊임없이 허물을 벗듯이 되풀이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소설가가 편집자와 끊임없이 상의하며 보다 낫게 보다 매끄럽게 글을 담는 퇴고 과정과 닮았다.

기억이라는 소설의 탈고 후에는? ...간단하다. 이제 아름답게 포장된 겉표지를 열고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만큼만 되새김질 하면 된다. '그 때는 참 풋풋했지',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 때는 참 좋았는데', '그 때는 정말 슬펐지만 난 정말 순수했어'라는 다 헤아리기도 힘든 갖가지 간식거리쯤 함께 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