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한밤중에 문득 자기성찰같은 넋두리

집으로 가는 길에, 비가 오질 않아서 걱정이라는 뉴스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아 그랬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고 정신없던 와중이라 비가 얼마나 오질 않았었던가 하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불과 몇 년전의 나를 돌이켜보면
나름 비오는 걸 좋아하고, 장마철 내내 우울한 기분마저 즐거워했었는데.
이것저것 영화는 잡식으로 다 좋아하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면서까지 먹으려고 노력하고,
돈이건 뭐건 사고 싶은 것은 사고, 먹고 싶은건 먹고, 술을 먹으면 끝장을 보곤 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간간히 듣던 좋아하는 CD라던가, 덜컹거려 이지러지는 활자 속에서도 나름 탐독할 줄도 알곤 했었더랬다.
머리가 좀 굵고서는 간혹 지하철에서 내려 소주 반병에 닭꼬치 하나를 먹고 들어가기도 하곤 했으니,, 것 참 술을 (것도 소주를) 정말 좋아했었나보다.

하지만 요새는 비오는게 귀찮아 마지않고, 장마철 내내 세차한 담에 비가 올까 맘을 졸이고,
영화는 귀찮거나 기분 다운되는게 싫어 무조건 액션-
맛있는 것은 여자랑 만날 때/여자친구랑 만날 때/여자한테 작업할 때 외에는 그닥 찾아다니려 노력하진 않는다.
사고 싶은 것은 정말 사도 되나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결국 지르지만 ;ㅁ;), 먹고 싶어도 운동한게 아까워 참고, 술을 먹으면서 내일 출근이나 모레 미팅을 걱정하게 되어 버렸다.
노래라고는 간혹 다운받는 몇월 몇째주 멜론 Top100이면 족하고, 그나마도 틈틈이 읽던 책은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안녕. 논문도 잘 안보는데 책 씩이나 볼 여유나 있을랑가. 
술보다는 안주를 더 챙기게 되었고, 술은 소주보단 맥주로, 아니면 간혹 사케나 양주로 바뀌어버렸네.
그 좋아하던 세단이나 쿠페도, 지금 차를 바꾸라면 박스카나 카렌스 같은 5도어의 유용성에 더 끌리게 되어버렸네.

마침 여자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상념이 탁 끊겨버렸다.
뭔가 막연하게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기분 속에서 건조하다 못해 쩍쩍대며 갈라지는 감수성을 잠시 마주했었나보다.
아니, 감수성이란게 과연 남아 있긴 했었을랑가. 그렇담 예전에 그건 대체 뭐였담. ㅎㅎ

p.s.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작업멘트로 비가 좋네, 빗소리가 좋네 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계속해서 날리던 구라 100프로 뻐꾸기 끝에 걸린 자기 최면이 깨어진 것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