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초

인간의 뇌는 특수한 구조로 되어있다. 만약 인간 뇌의 구조가 하드디스크처럼 되어 있다면, 대체 용량이 얼마나 될지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손상되는 정보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 16만 컬러 이상의 총천연색 동영상이니까. 그렇다면 기억의 파손, 기억의 왜곡이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만약 인간의 뇌-정확하게는 기억을 저장하는 부분-이 하드디스크처럼 트랙과 섹터로 구획지어져 있다면 기억의 왜곡이 일어날 견지는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뇌는 유동적인 구조로 기억을 저장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하드처럼 용량이 부족할 때 예전 파일에 덧씌우고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잊어먹었던 것으로 생각하던 기억은, 혹은 기억하지 못하던 과거도 자극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일을 한번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기억 상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기억을 말소해서 심리적 자살로 현실을 도피하는 기한은 약 10-15년, 15년 후라면 다시금 플래쉬 백flash back과 같은 현상과 조우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기억의 삭제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받아들인 정보대로 저장될지언정, 예전과 동일한 상태로 로드되지는 않는다더라. 현재의 상황, 심리 상태등에 따라 적절하게 왜곡되어 상기되는 것이 우리가 아는 기억이고 추억이라고 한다.

어제, 그리고 1시간 전의 과거. 객관적인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완벽한 보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마찬가지로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미래조차, 어느덧 현실이 되어 과거로 흘러간다.

현재라는 단어의 의미가 뭘까. 과연 현재라는 시간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러면 미래는? 시간이란 결국 과거만 존재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볼 수도 없잖아. 현재라고 인식하는 순간 과거가 되고, 미래라고 인식하는 순간 현재가 되어버리는 모순- 그리고 이 무한의 알고리즘. 그러나 과거의 기억, 미래의 기억이라는 말은 옳은 것인가. 그렇다면 현재란 우리가 지금을 산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계단 위에서 미래라는 새로운 계단으로 발을 뻗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어느 과학자가 현재라는 시간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증명을 했다. 내 생각에 인지 심리학적인 요소로 증명하지 않았나 싶다. 증명 방법은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단지 내 잡지식에 기반한 추측일 뿐이다. 고대에서 들었던 2-3개월 남짓의 짧은 심리학 입문 수강 지식의 토대에 따르면, 인간이 한번 본 것은 대략 8초간 기억된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되는 8초간의 정보들중 대부분은 소멸되고 기억된다고 할 수 있을만한 것은 충격적으로 느끼는 팩트들 뿐이다(상기할 수 있는 기억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반복을 하게 되면 더 확실히 기억할 수 있다. 2차 학습을 통해서 기억 하는것은 10분~20분여일 것이다. 물론 계속적인 반복학습은 이러한 기억을(상기하기 쉬운 기억) 더욱 손쉽게, 그리고 오래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현재를 8초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최초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건지.. 뭐, 상관없지만.

어찌됐건간에 그 과학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려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현재는 8초의 지금 순간이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매번 부르짖는 현재, 지금이라는 시간의 부피가 8초라.

내가 그간 여자친구에게, 혹은 그러길 바라던 사람에게 했던 달콤한 말들. '사랑한다'는 말의 마법. 나의, 혹은 그녀의 사랑의 고백은 입 밖에서 꺼내어지는 순간 이미 과거였다. 결국 그 사랑은 과거의 사랑- 그 앞에 자리할 8초의 순간을 지나서 기다리고 있는 미래라는 시간에서 어쩌면 그 사랑은 이미 식어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그는, 그녀는, 그리고 당신은 과거의 사랑에 매달렸고, 매달리고, 매달릴 것이다. 단순히 그게 실제로 어떤 모양이건, 어떤 모양이었건 따위는 이미 관심 밖일지도 모른다. 항상, 늘, 그리고 언제나 현재라는 8초의 순간동안-오로지 기억속의 왜곡된 과거의 추억과, 미래라는 불확실한 시간의 기다림 속의 간극, 그 시간동안 어찌해야 할지 불안해하며, 떨려하며, 그리고 기대하며 종국에는 어쩌면 실망하며- 한편으로는 8초라는 짧은 현실과 그 왜곡된 옛 세상속에서 행복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