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런 감수성/오글오글 과거의 흔적'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08.05.21 그는 이 1분을 잊겠지만 난 그를 잊을 수 없었다
  2. 2008.05.11 점점 옅어지는 감정을 마주하기란
  3. 2008.05.06 내부순환로
  4. 2008.04.19 8초
  5. 2008.01.24 아날로그를 추억하며

그는 이 1분을 잊겠지만 난 그를 잊을 수 없었다

"뭘 원하는 거죠?"
"친구가 되고 싶어. 내 시계를 일 분만 봐줄 수 없겠어?"
그녀는 일 분 동안 시계를 바라본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린 일 분 동안 함께했어. 난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일 분을. 이 일 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

그는 이 일 분을 잊겠지만 난 그를 잊을 수 없었다.


아마 중학교 3학년 때였나. 아니, 그 때가 분명하다. 그때까지 내가 기억하는 홍콩 영화는 '호소자', '영웅본색', '첩혈쌍웅'이나 '동방불패'정도의 가벼운 액션이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을 남겨준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가던 날, 적적한 마음에 무심코 찾은 비디오 가게에서'첨밀밀'을 빌렸다. 아마도 새로 개봉한 영화를 같이 보자고 약속하고 그를 지키지 못한 애틋함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러한 내 심리상태 탓인지 그닥 멜로를 좋아한적도, 좋아하지도 없지만 지금도 최고의 멜로 영화 하면 으레 첨밀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찌보면 우연과 필연으로 점철된 동화같은 얘기지만, 나는 아직도 미키마우스 문신과 등려군의 노래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나의 사랑에 대한 팬터지이려나.

첨밀밀을 보고 나서, 벅찬 마음에 홍콩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였던 것 같다. 끝도 없이 홍콩 영화에 취해, 느와르에 취해, 정신없이 르네상스의 막바지를 치닫던 홍콩 영화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던 것은. 여명으로 시작된 홍콩 배우에 대한 관심이 장국영으로 옮아가면서, 중 3 가을의 어느날 밤, 아비정전을 접했다.

이 영화는 화자인 아비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아비정전 이후의 다른 왕가위의 작품들에 대한 내 느낌은 아비가 왕가위 자신에 대한 페르소나가 아닐까 생각하게끔 만든다. 영화의 서두에서, 왕가위는 자신의 아바타인 아비의 입을 빌어 '발이 없는 새'의 전설을 들려준다. 발이 없어 평생을 날아야 하며 한번의 쉼을 위해서 땅에 내려앉으면 죽어야하는 새의 전설에 대해서.

역시 아비도 그 전설의 새처럼 앉을려고 하지만 좀처럼 그 방황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모성애 결핍과 부친에 대한 증오로 뭉친 그는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그러나 뭐라 형용하기 힘든 슬픈 눈을 품은 (그래서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건가)- 그래서 더 매력적인 존재다. 그는 결핍된 애정을 충족하려 끊임없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갈증을 해갈시켜줄 수 없었다.

장국영의 유명한 맘보춤과 함께 널리 알려진 것이 리첸(맞나? 무튼 장만옥이었는데;)과의 유명한 대사이다. 그는 그녀를 1분이라는 시간의 마법 속에 가둬버리지만, 이내 그녀 곁에 안주하지 못하고 발이 없는 새인마냥 떠나고 만다.

유가령과 장학우의 사랑은 언제나 평행선을 달린다. 유가령도 한번의 만남으로 아비를 사랑하고 아비의 절친한 친구인 장학우 역시 그녀를 한눈에 사랑하게 된다. 유가령은 항상 아비를 소유하길 원하지만 늘 버림받고, 장학우는 그녀의 존재를 느끼는 것 그 자체로도 만족한다 (결국 그녀에게 버림받는다;;). 어쩌면 아비와 리첸의 거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른손을 들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을 드는 것과 같은.

장만옥을 사랑하는 유덕화의 모습도 그와 닮아있다. 힘들때면 전화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하지만 그 역시 방황하며 결국 생계를 위해 배를 탄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던 아비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되지만, 그에게 그녀와의 조우는 더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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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 어머니를 만나러 가지만, 차마 만나지 못하고 돌아설 때- 나는 장국영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여러번 봤지만, 시간이 생길때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 그러나 보고 나면 심한 우울증에 주체할 수가 없기도--; 왕가위께 대체로 그런듯;

매일 같은 시간, 장만옥은 아비를 기다리고 유덕화는 그러한 장만옥의 전화를 기다리던 엇갈리는 일상의 모습 속에서 느끼던 애틋함이 떠오르네. 노박이 아비정전 얘기를 해서 갑자기 생각이 나서 후다닥 건성건성 봤다;; 역시 바쁠 땐 딴짓이 마구 하고 싶어진다. 망했다, 밤새야겠네, 어쩔;;

점점 옅어지는 감정을 마주하기란

점점 옅어지는 감정을 마주하기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설레임과

처음 손을 잡고,
처음 눈을 맞추고,
처음 입술을 부비던

그 때의 그 풋풋함.
그 때의 그 짜릿함.

함께 나누던 그 시간이
항께 향유하던 그 순간이
흔하고 뻔한 추억으로
진부한 그 단어로 갈무리되는 동안

내 설레임도,
내 애틋함도,
내 사랑도
그저 소진하고 있었을 뿐이었던가.

서로 점점 옅어지는 감정을 마주하기란.
서로 잃어버린 열정을 확인하기란.
그 마주침이란, 
안타까움이란,
그 잔인함이란.


내부순환로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 막혔으나 그닥 힘들지는 않았다. 부슬거리던 빗방울이 차창에 부딪히며 치닫던 그 와중에도, 불빛-테일램프, 반댓차선의 헤드램프의 행렬- 들은 쉽없이 망막으로 부딪혀 명멸하는 듯 했다.

생각해보면, 그 길은 한번쯤 지났음직한 길이었다. 아니, 지났음이 분명한 길이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기억이 무채색 흑백 무성영화에서 총천연색 컬러의 디지털 영화마냥 또렷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씩 하나씩 점점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지는 기억에서 기인한 기묘한 기분속에서 차가 꽝꽝 울리도록 틀어놓은 음악조차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 어쩌면 별거 아닌 죄의식에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그럴 필요 없음에도 극도로 긴장했는지도 모른다.

채 차창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담배연기가 알싸하니 코를 간질이고, 그덕에 약 10여초간 쉼없이 재채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재채기를 심하게 하던 그 와중에 '그곳'을 미처 고민할 여력도 없이 지나치고 말았다.

점점 멀어질수록 또렷이 떠올랐던 기억들이 다시 저편 깊숙이 가라앉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홀가분해지는 이 기분 그대로라면 이미 지나친 그곳에 일부 흘려버리고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8초

인간의 뇌는 특수한 구조로 되어있다. 만약 인간 뇌의 구조가 하드디스크처럼 되어 있다면, 대체 용량이 얼마나 될지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손상되는 정보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 16만 컬러 이상의 총천연색 동영상이니까. 그렇다면 기억의 파손, 기억의 왜곡이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만약 인간의 뇌-정확하게는 기억을 저장하는 부분-이 하드디스크처럼 트랙과 섹터로 구획지어져 있다면 기억의 왜곡이 일어날 견지는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뇌는 유동적인 구조로 기억을 저장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하드처럼 용량이 부족할 때 예전 파일에 덧씌우고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잊어먹었던 것으로 생각하던 기억은, 혹은 기억하지 못하던 과거도 자극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일을 한번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기억 상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기억을 말소해서 심리적 자살로 현실을 도피하는 기한은 약 10-15년, 15년 후라면 다시금 플래쉬 백flash back과 같은 현상과 조우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기억의 삭제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받아들인 정보대로 저장될지언정, 예전과 동일한 상태로 로드되지는 않는다더라. 현재의 상황, 심리 상태등에 따라 적절하게 왜곡되어 상기되는 것이 우리가 아는 기억이고 추억이라고 한다.

어제, 그리고 1시간 전의 과거. 객관적인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완벽한 보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마찬가지로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미래조차, 어느덧 현실이 되어 과거로 흘러간다.

현재라는 단어의 의미가 뭘까. 과연 현재라는 시간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러면 미래는? 시간이란 결국 과거만 존재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볼 수도 없잖아. 현재라고 인식하는 순간 과거가 되고, 미래라고 인식하는 순간 현재가 되어버리는 모순- 그리고 이 무한의 알고리즘. 그러나 과거의 기억, 미래의 기억이라는 말은 옳은 것인가. 그렇다면 현재란 우리가 지금을 산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계단 위에서 미래라는 새로운 계단으로 발을 뻗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어느 과학자가 현재라는 시간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증명을 했다. 내 생각에 인지 심리학적인 요소로 증명하지 않았나 싶다. 증명 방법은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단지 내 잡지식에 기반한 추측일 뿐이다. 고대에서 들었던 2-3개월 남짓의 짧은 심리학 입문 수강 지식의 토대에 따르면, 인간이 한번 본 것은 대략 8초간 기억된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되는 8초간의 정보들중 대부분은 소멸되고 기억된다고 할 수 있을만한 것은 충격적으로 느끼는 팩트들 뿐이다(상기할 수 있는 기억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반복을 하게 되면 더 확실히 기억할 수 있다. 2차 학습을 통해서 기억 하는것은 10분~20분여일 것이다. 물론 계속적인 반복학습은 이러한 기억을(상기하기 쉬운 기억) 더욱 손쉽게, 그리고 오래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현재를 8초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최초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건지.. 뭐, 상관없지만.

어찌됐건간에 그 과학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려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현재는 8초의 지금 순간이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매번 부르짖는 현재, 지금이라는 시간의 부피가 8초라.

내가 그간 여자친구에게, 혹은 그러길 바라던 사람에게 했던 달콤한 말들. '사랑한다'는 말의 마법. 나의, 혹은 그녀의 사랑의 고백은 입 밖에서 꺼내어지는 순간 이미 과거였다. 결국 그 사랑은 과거의 사랑- 그 앞에 자리할 8초의 순간을 지나서 기다리고 있는 미래라는 시간에서 어쩌면 그 사랑은 이미 식어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그는, 그녀는, 그리고 당신은 과거의 사랑에 매달렸고, 매달리고, 매달릴 것이다. 단순히 그게 실제로 어떤 모양이건, 어떤 모양이었건 따위는 이미 관심 밖일지도 모른다. 항상, 늘, 그리고 언제나 현재라는 8초의 순간동안-오로지 기억속의 왜곡된 과거의 추억과, 미래라는 불확실한 시간의 기다림 속의 간극, 그 시간동안 어찌해야 할지 불안해하며, 떨려하며, 그리고 기대하며 종국에는 어쩌면 실망하며- 한편으로는 8초라는 짧은 현실과 그 왜곡된 옛 세상속에서 행복해하며.

아날로그를 추억하며

이웃님 블로그에 놀러갔다가 몇년만에 귀여운 귀여운 아날로그 테이프 무리 (굳이 얘기하자면 구형 마그네틱 스토리지라고 해야하려나) 의 사진을 접했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ADC 컨버터 없이는 아날로그 신호를 마땅히 회로적으로 처리하기조차 힘든 시대에 살면서도, 때때로 접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끌어내는 기억의 메타포들을 우연히 접할때면 종종 아련한 기분에 젖어들곤 한다. 어쩌면 0과 1의 디짓digit으로 모든 것이 표현되는 (그래서 차갑게만 느껴지는) 디지털의 특성 때문에 LP판이 긁히는 소리조차 지금에와서는 낭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더불어 요새 아날로그 써킷 디자이너들은 몸값도 킹왕짱이다) 일지도 모른다. 뭐, 난 어차피 막귀라 CD가 짱짱거리네, LP가 음이 풍부하고 부드럽네 하는 내용은 당연히 잘 모른지만 핫핫. 얘기가 한도 끝도 없이 흘러가네.

각설하고.

예전에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바로 레코딩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라디오를 듣던 기억이 새록거리며 피어난다. 그러고보니 가장 먼저 내 돈을 주고 샀던 앨범은 바로 신승훈 2집이었구나. 한번 사면 뽕을 뽑는 성격이 초등학교 때부터 싹수를 보였던 것인지 여전하여 테이프가 늘어날 때 까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그 다음부터는 앨범을 사자마자 늘어날 것을 대비해서 공테잎에 복사해서 들었던 기억이 나네. 어쩌면 지금보다 그때가 더 집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테잎 2개를 넣을 수 있는, 결과적으로 테잎 복사가 가능한 소형 오디오를 사고 어찌나 기뻐했었는지. 하기사, 그 때보다야 워크맨 선물로 받았을 때가 더 기뻤으려나.

중학교 2학년 때 듀스 3집을 CD로 처음 선물로 받으면서 그 이후 테이프에서 CD로 앨범을 모으는 카테고리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CD는 당시 내 입장에서 너무 비싼 하이엔드 제품이었기 때문에 그닥 많이 사질 못했다. 뭐 어쩌면 포터블 CDP가 없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어쨌건 CD를 조금씩 사모으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자주 듣는/듣고 싶던 앨범은 여전히 테잎으로 샀었다. 그 무렵에는 건즈앤로지즈를 필두로 스매싱 펌킨즈, 퀸을 알아가면서 락에 취향을 붙이다 못해 메탈 쪽으로 급격히 취향이 쏠리던 시기였다. 학부 1학년 때 마아녀에게 빌려줬다가 무려 2년만에 돌려받은 (힘들게 갈구면서 받아두고 지금은 어디갔는지도 가물가물한) 판테라의 초기 앨범 카우보이즈 프롬 헬이나 발거 디스플레이 오브 파워를 사기 위해 지리도 모르는 명동거리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핫핫.

지금 생각하면 열라 유치하게도 당시 날카로운 첫키스를 했던 동네 누나-_-에게 듣기좋은 말랑말랑한 팝송들 중간중간에 멘트를 녹음해서 선물한 적도 있었구나. 푸힛. 학부 2학년 때 어찌어찌 둘이 다시 만나서 그 당시 테잎을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 느끼한 테이프를 선물하던 그 짓은 아마 고등학교 때까지 했던 걸로 기억한다. 블링크의 베티와 키스미가 나왔을 때였으니까 대충 계산하면 나오려나;; 상상 그대로 키스하려고-_-  부러 좋은 노래라고 이어폰을 나눠끼고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 엇차차, 그건 CD였나;;
지금은 들으려 해도 들을 장비조차 모조리 고장이 나서 없는 마당에도 이사다닐 때마다 버리지 않고 기를 쓰고 가지고 다니던 (그리고 어김없이 책장 어름에서 뽀얖게 먼지가 쌓여 천대받고 있던) 녀석들과 눈물의 이별을 한게 바로 이번달인데, 문득 녀석들을 괜히 버렸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버린 것은 테잎 무더기가 추억의 조각들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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