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밤, 아니 환상적인 아침이었다.
아, 이게 대체 몇 경기만이냐. 보는 내내 두근두근 가슴을 졸이느라 잠이 올 새도 없었다.
가장 고무적인 사실은 기존의 바르샤 잡던 팀들이 보여줬던 소위 무리뉴, 히딩크식의 안티풋볼(극단적 수비-역습) 이 아니라 6-4 정도로 밀리긴 했지만 거의 대등하게 바르샤와 맞붙어서 이겼다는거 (심지어 얼마전 레알도 맞불을 놨다가 대패를 했었는데!!). 밀리기도 밀렸지만 유연한 역습 전술은 딱 벵거 스타일의 물 흐르는 듯한 축구-_-bbb
사실 계획대로라면 나는 4시 40분쯤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는 전반전부터 닥본사를 했어야 했다...만;
몸살 기운도 있고 뭐 이런저런 이유로 일어나니 5시 50분(덕분에 왈콧이 팔팔했다는 전반을 못 봤다)
참 TV를 켜기도 전에 이렇게 긴장하던 경기가 몇번이나 있었나 싶다.
처음 몇분간은 누가 출전했는지 상황파악 하느라고 멍~해 있었는데, 후반 초반, 스코어는 0-1로 바르샤가 앞서고 있었다.
아아- 올해도 안되나 하고 슬퍼하면서 살펴봤던 양팀의 면면은 예상과 같이 (나스리가 나올줄은 반신반의했지만)
반 페르시 메시
나스리 월콧 비야 페드로
세스크 사비 이니에스타
윌셔 송 부스케츠
클리시 코시엘니 요한주루 에부에 맥스웰 아비달 피케 알베스
슈체츠니
의 433 혹은 4231 형태의 아스날과 433 크루이프 스타일의 정석 바르샤.
사비-이니에스타-부스케츠(혹은 케이타) 라인을 세스크-윌셔-송이 버틸 수 있을까 긴가민가 하다가 읭? 윌셔라고?? 윌셔랑 슈체츠니가 나왔다는데 후덜덜.
방년 20세, 수트를 입어도 캐고딩 느낌이 나는 이런 꼬꼬마들을 주전으로 내보낸건 역시 벵거답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꼬꼬마들이, 특히 이 꼬꼬마가 참 잘해줬다. 영국에서는 MOM을 윌셔로 꼽고 있기도 한 모양.
생각보다 침착했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참 노련했다. 뭐 중간중간 패스나 좀 아쉬운 것들이 있긴 했지만, 기대 이상의 활약을.
바르샤는 공을 돌리며 점유율을 높이며 슬금슬금 먹어 들어오는 딱 자기 페이스의 경기를 하고 있었고, 아스날은 바르샤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막혀 공을 잡으면 편하게 패스를 할 여력이 많아 보이질 않았다.
특히 양 사이드는 탈탈 털리고 있었는데 클리시랑 에보우에는 후반 중반까지는 제대로 올라갈 생각도 못 하고, 나스리까지 수비에 계속 가담하고 있더라. 아 클리시, 첫 골 때 삽질했다지만 반 페르시에게 내준 오른발 로빙 스루 최고였어. '-')bbb
부상에서 돌아온 나스리는 역전골을 어시하긴 했지만, 뭔가 몸이 좀 무거워 보여서 아쉽.. 에부에가 탈탈 털리느라 수비하느라 그랬던건가 싶긴 하지만, 다음엔 좀 폼을 끌어올렸으면 좋겠고, 반 페르시는 최근 경기에 비해 몸은 좀 무거워 보였지만 (HL을 보니 삽질도 꽤 많더라) 결국 그 자신의 클래스를 보여줬다. 부상 후 10경기 12골이다. 경기당 무조건 한 골은 넣어주는 무서운 상승세 ㅠ_ㅠ 그리고 믿어준 벵거와 기쁨의 포옹을...
얘들아 나 꼴 넣었다. 만쉐이~
후반 중반, 바르샤 미들-수비 간격이 점점 벌어지면서 아스날이 폼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펩은 비야->케이타/벵거는 송->아르샤빈의 서로 다른 교체를. 결과론이지만 허리를 두텁게 하려는 펩은 실패했고, 공격을 강화한 벵거의 노림수는 적중했다. 더불어 교체한 아르샤빈이 역전골을 넣는 덤까지.
반 페르시 동점골 때도 그렇고 아르샤빈 역전골 넣을 때도 그렇고, 미안하지만 난 안 들어가는 줄 알았다. 나스리가 뒤로 어정띄게 패스할 때는 욕하다가 골과 함께 괴성을;; 코시엘니는 경기내내 와 쟤가 저랬나 싶을정도로 꽤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다. 에부에나 주루가 수비 삽질에 패스 미스로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과 대조가 되서 더 그래 보였을수도. 특히 주루 얘는 참 믿음이 안 가고 이상하게 정이 안 간다. 원래 위닝하면 젤 빨리 팔아 치우는 녀석인데 '-')a
어찌됐건 세스크도 애써 아직 1차전만 끝났을 뿐이라고 애써 담담한 척 하고 있고(ㅋㅋ) 아직 2차전은 남아있지만, 정말 기분좋은 명경기였다. 이겨서 금상첨화였고, 기대만 주던 꼬꼬마들이 기대에 부응했다는데 감동을 받는다.
덧, MBC 스포츠 중계 캐스터 누구냐. 아주 대놓고 바르샤 칭찬을 하다가 동점골, 역전골 후에는 대놓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바르샤 편을 들어서 정말 짜증났다. ㅠㅠ